2022. 7. 25. 11:58ㆍ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현재를 임하는 자세.
온달스네스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 또 이동할 날이 다가왔습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져있던 깔금한 숙소에서 마지막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챙겨온 먹거리가 28인치 캐리어의 절반 이상이었던 만큼 가방이 엄청 무거웠는데,
여행일자가 지날 수록 조금씩 캐리어가 가벼워지는 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여행이 줄어든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 살짝 아쉬워지네요.
오늘은 Norwegian Scenic Routes 중 하나인 게이랑에르-트롤스티겐 코스를 지나게 됩니다.
노르웨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떠올릴 만한 유명한 곳들이지요.
저도 사진으로는 익히 봐왔던 명소들인데 실제로는 어떤 느낌을 줄지 궁금했습니다.
Geiranger – Trollstigen | Nasjonale turistveger
일기예보가 빗나가기를 바랬지만 아쉽게도 이변은 없었습니다.
비가 잔뜩 내리고 구름이 많이 끼었습니다.
아쉽지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 안에서 나름의 묘미를 찾아내야겠지요.
돔바스 쪽으로 조금 이동하다가 갈림길에 들어서자 캠핑카들이 잔뜩 늘어서있고, Scenic Routes 표식이 나타납니다.
본격적인 여행길이 시작되려는 것 같아보입니다.
중앙선이 사라지고 차선이 좁아지며 나무가 우거지기 시작합니다.
이른 시간에 부지런히 출발해서 그런가, 도로위엔 좀처럼 오가는 차들이 없습니다.
5월 말 까지는 쌓인 눈 때문에 출입이 금지된 도로.
마치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주행을 해 나갑니다.
전날 온달스네스 전망대에서 험상궂게 생긴 바위들 사이의 골짜기를 바라봤을 때는매우 험난한 길을 만나게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숲으로 우거지고 고요한 길 로부터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멀지않은 거리를 이동한 끝에 트롤스티겐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알 수 없는 감정
트롤스티겐(Trollstigen)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자,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웅장한 자연의 존재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그 모습도 이미 사진으로 접해왔기에 신기하거나 특별할 게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직접 조우하니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봅니다.
오랫동안의 염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일지, 예상했던 것 보다 거대했기 때문일지. 하필 이 순간 들었던 음악이 감동적이어서 그랬던 건지.
잘 모르겠네요. 답은 찾지 못 했습니다.
그저 지금은 말 없이 눈 앞에 펼쳐진 자연을 받아들이는데 애를 쓰도록 해야겠습니다.
이 거대한 장벽을 아랫쪽부터 윗쪽으로 점차 고개를 들어가며 눈에 담아봅니다.
거대한 돌벽과 그 사이를 흐르는 물줄기들.
사진으로는 전달이 되지 않지만, 떨어지는 물줄기 소리가 어마어마해서 옆사람과 대화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 아름다운 길을 천천히 올라봅니다.
지그재그로 이 곳을 오르는 길도 그 자체로 거대한 자연의 일부입니다.
그렇기에 도로를 낸 노르웨이 사람들에게도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여행객으로 보이는 부부가 있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봅니다.
답례로 저도 사진을 찍어주려고 했는데 본인들은 자주 오는 곳이라 됐다고 합니다.
현지인 이었나봐요. 부러운 분들....
외기 온도는 6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전날 올레순에서 각자 긴 옷을 준비하기를 잘했죠.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았던 트롤스티겐 등반도 곧 끝이났고, 멋진 휴게소를 만났습니다.
이 곳의 건축은 철과 돌, 시멘트를 많이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돌아보면 이들 소재가 주는 느낌과 색감이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휴게소 옆으로는 트롤스티겐 전망대로 이어지는 데크가 있었습니다.
평온해보이는 푸른 강물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모습이 그 자체로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이 아름다운 푸른 물은 낭떠러지를 만나는 순간 무시무시한 물줄기로 돌변합니다.
트롤스티겐의 메인 폭포지요.
무시무시한 폭포가 흐르는 걸을 구경하며 전망대를 향해 마저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전망대에서 돌아오는 여행객이 있어 말을 붙여봅니다.
우리 : "뭔가 보이는게 있나요?"
여행객 : "아니요..ㅎㅎㅎ 안개가 너무 심하네요."
서로 : "하하.. ㅠㅠ"
그래도 시시각각 구름이 지나가며 잠깐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덕분에 감사하게도 우리 가족은 트롤스티겐과 그 주변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에 드는 순간
트롤스티겐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카메라가 사망하였습니다.
배터리 잔량은 60%정도로 여유로웠는데 전원을 켜도 LCD 화면이 검은 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뷰파인더도 마찬가지 였고요.
아무래도 계속된 우중 촬영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해봅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전 일단 전원을 끈 채로 배터리부터 분리해봅니다.
방수 카메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빗방울 좀 흩날리는 데서 찍었다고 이런 법이 어디있어?
카메라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제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면서 앞으로의 우리 가족의 여정은 어쩌면 좋을지..
망연자실해지는 순간.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것 같은, 세상이 다 끝나버린 것 같은 제 모습을 보며 아내가 말합니다.
"우리 가족 여행이잖아요?"
어쨌거나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고,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여행은 계속 되어야하죠.
이 Scenic Route의 이름은 트롤스티겐 - 게이랑에르 이지만, 트롤스티겐을 지난 이후 도로의 모습도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길을 가다보면 이따금 매에~ 하는 소리와 함께 짤랑짤랑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양 무리가 길을 막은 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도 이제는 익숙합니다.
이번엔 비켜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잠깐 차를 옆에 대고 양을 더 잘 보기위해 창문을 살짝 내렸는데 이놈들이 차로 다가오더군요.
차 주변을 맴돌면서 울어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손잡이를 입으로 물고 문을 열려고 애쓰기 시작합니다. -_-;
나중에 알았는데 차창을 내리는 행위를 먹이를 주려는 걸로 인식한다고 하더라구요.
'뭐야, 먹을 거 왜 안줘? 어딨어?'
아마 양들은 이런 심정이었겠죠?
휴대폰으로라도 열심히 찍었어야했는데 당시에는 너무나도 시무룩하여 차마 그렇질 못했습니다.
이 잊지못할 모습들을 그 순간의 기분으로 인해 미디어로 남기지 못한 게 너무 아쉽더군요.
어마어마하나 물줄기, 구드브란즈유벳(Gudbrandsjuvet)
게이랑에르로 향하던 중, 아내가 마침 가보고 싶었다는 곳이 있어서 잠깐 들러보기로 합니다.
Gudbrandsjuvet | Nasjonale turistveger
매섭게 흐르는 강물과 데크, 그리고 카페가 이쁘게 마련된 곳이었습니다.
강물이 흐르며 철로 만들어진 보행교 다리와 연신 부딪히고, 데크는 우웅우웅 소리를 내며 계속 흔들흔들 합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물줄기.
그저 물이 흐르는 것 뿐이고 내가 빠질 일도 없을텐데,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소름이 돋습니다.
'아직도 여기서 시나몬 롤을 안 드셔보셨다구요??'
라고 적혀있는 카페에서는 이 무시무시한 강물을 평온하게 구경할 수 있습니다.
마침 한참을 운전해오느라 허기진 배를 간식으로 채워봅니다.
시나몬 롤의 맛은 특별하지는 않고 우리가 떠올리는 그런 정도 였습니다. :)
길 건너편에 '유벳 호텔'이 있어서 구경하러 가 보았습니다.
슥 보면 어디가 호텔이지? 객실은 어디있는데? 싶을 정도로 노르웨이 자연 속에 푹 파묻힌 호텔로
건물 한 채가 아닌, 객실과 용도 별 공간이 모두 분리되어 띄엄띄엄 위치해있습니다.
도착해서도 직원이 알려주기 전 까지는 어디가 객실인지 몰랐어요.
https://goo.gl/maps/ufWP5UXTu3GoApP37
느긋하게 식사라도 하면서 구경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이날 결혼식 준비로 레스토랑 이용이 불가능하더라구요.
이런 자연 속에서의 결혼이라니. 노르웨이의 결혼 문화가 궁금해지는 순간 이었습니다.
멋진 풍경이 나오면 잠시 멈춰서 구경을 하고. 또 움직이고.
이를 반복하며 우리 가족은 게이랑에르를 향해 또 떠나갑니다.
물론 중간중간 양들을 만나면서요.
노르웨이는 그 특이한 지형 덕분에 도로가 끊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덕분에 '카 페리'라는 특이한 방식으로 도로를 잇기도 합니다.
배를 타고 차를 이동하는건데요.
그저 도로를 달리다 신호등에 멈춰서듯 차선에 맞춰 줄을 서 있다가 수신호를 받아 그대로 차를 몰고 배에 탑승,
배가 건너편 육지에 닿으면 가던 길을 이어서 가기만 하면 됩니다.
쉽게 말하면 도로가 쭉 이어져있는 거죠. 육지 - 물(배) - 육지.
탑승할 때 요금 지불이나 승선권 구입 절차는 없습니다.
차량 번호를 기억해두었다가 향후 렌터카 회사를 통해 청구를 할 거예요.
드디어 조우한 게이랑에르
그 너머가 보이지 않던 언덕길을 오르자, 갑자기 웅장한 산맥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말로만 듣던 게이랑에르에 드디어 우리 가족도 도착한 것입니다.
게이랑에르는 여러 전망대가 있는데요.
언덕을 내려가기 전, 가장 먼저 외르네스빙엔(Ørnesvingen) 전망대에 들러보게 되었습니다.
이 전망대는 지나가게 된다면 꼭 들러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 높이에서, 이 각도에서, 차량으로 쉽게 접근 가능한 전망대는 이 곳 뿐이거든요.
https://goo.gl/maps/9vZEr5zqPnBqjcobA
게이랑에르는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웅장했습니다.
"피오르드 지형은 빙하가 깍여 만들어졌고 U자 모양을 하고 있어요."
과학시간에 몇몇 사진과 이정도의 설명으로 지형의 특색을 배웠던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접하니 그 느낌이 다릅니다.
일단 주변 산들의 높이가 어마어마해요.
사진으로는 그 느낌을 담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외르네스빙엔 전망대에서 게이랑에르와의 첫 초우를 마치고 마지막 구불 길을 내려옵니다.
저 멀리 게이랑에르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피요르 센터(Norwegian Fjord Centre)에 방문합니다.
게이랑에르에 오신다면 이 곳 방문을 적극 추천드립니다.
특히 아이를 동반하신다면 꼭 이요!
https://goo.gl/maps/sjPxQTiNqMqsXHUDA
입장료는 인당 15000원 정도 인데,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일러스트 책자(지구의 지형에 관련된 이야기)를 손에 쥐어주고요.
내부에 설치된 소극장에서 피요르 지형이 형성된 과정과 자연의 모습을 10분 이내의 짧은 필름으로 보여주고
옛 사람들의 피요르 생활 모습을 실감나게 재현해놓은 전시실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지하에는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 마련돼있는데요.
현미경으로 나뭇잎이나 돌멩이를 관찰해볼 수도 있고, 이것들을 직접 만져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소리지르며 뛰어다닐 만큼 그 외에도 다양한 놀거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리지르는 자기 아이를 보며 당황해하는 부모의 모습은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네요 ^^)
게이랑에르 투어 시작
게이랑에르는 보트, 카약, 유람선 등 다양한 방식의 투어로 경험해볼 수 있는데요.
아래 사이트에서 미리 예약을 하시면 마음놓고 이용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현장 구매도 가능합니다. 널널한 것 같아요.)
우리 가족은 1시간 반 동안 게이랑에르 피요르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Fjordsightseeing 프로그램을 예약했습니다.
Aktiviteter sightseeing turer med båt buss i geiranger - VISIT Geiranger AS (geirangerfjord.no)
Information 부스는 게이랑에르 마을 초입에 바로 위치해있는데 놓치고 싶어도 놓칠 수 없는 자리에 있습니다.
주변에 차량을 대고 배를 타러 들어가봅니다.
참고로 이 곳 Information 부스 화장실은 유료입니다.
여전히 비바람이 흩날리고 있어서 우비를 챙겨입고 승선했습니다.
친절하게 가이드 이어폰도 제공해주시네요.
한국어 해설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깎아자른 듯한 날카로운 암벽과 흘러내리는 물줄기들.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니 신비로운 느낌이 더해집니다.
그저 돌 산에 나무가 좀 자라고 있는 풍경으로만 보이는데, 중간중간 집도 있고 그렇습니다.
이런 척박한 곳에서 사람들은 농장을 세워 가축을 기르기도 하고 삶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게이랑에르 마을에서나 살 줄 알았는데, 배를 타고도 한참을 들어와야 하는 이런 곳에 삶의 터를 마련하고 마을을 꾸리기도 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저 멋있는 관광지인 줄로만 알았지만 속에 숨은 사연을 들으며 구경을 하니 사뭇 애잔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그깟 카메라가 뭐라고.
이런 여행을 눈앞에 뒀으면서 괜히 꽁해있던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투어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위해 이동해봅니다.
아이는 '국수(면)' 요리가 먹고 싶다고 했지만, 아빠는 거기에 국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그쪽으로 일단 향해봅니다.
(면 요리는 없었습니다. 아들 미안..)
오늘의 저녁은 이 곳에서 해결했습니다.
https://goo.gl/maps/r9LwgkdozPgZz1zn7
식당은 게이랑에르 마을 꼭대기에 위치해있어요.
아래 그림지도의 왼쪽 위에도 표시가 되어있네요.
헛간을 개조한 것 같은 인테리어가 신기했고, 음식의 맛에 놀랐습니다.
생선과 양고기 요리를 주문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나올 뻔 했습니다.
오늘의 여정에서 힘들었던 것들이 모두 씻겨져 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종업원도 너무나 친절했고요.
팁문화가 일반적이지는 않았지만 저희는 이 식당에서 너무나 만족한 나머지 팁을 지불하기로 합니다.
종업원이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르네요.
테이블은 8개 남짓이었던 것 같은데, 방문객이 많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예약을 꼭 하셔야될 것 같습니다.
창가 자리로요.
날씨가 좋다면 게이랑에르 피요르를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잊지못할 맛있는 식사를 즐기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길었던 하루를 마치고 숙소로 되돌아갑니다.
오늘은 게이랑에르에서 묵기로 했어요.
우츠섹튼 예이랑에르 호텔.
나무로 된 문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건물, 원룸처럼 작은 객실.
하지만 필요한 건 다 갖추고 있는 아늑했던 곳.
무엇보다 객실에서 게이랑에르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게 매력이었습니다.
즐기려고만 했던 여행이지만 우리 가족 모두들 많은 것을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힘든 기색은 커녕 더 신나하는 아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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