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18. 21:30ㆍ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아름다운 것들로만 가득 채우기도 부족하다.
주변에 나무가 참 많은, 한적한 어느 한 공항에 비행기가 내렸습니다.
인천을 출발한 지 장장 19시간만에 노르웨이에 도착했습니다.
중동에서 온 대가족들의 심사에 지친 공무원들이 차례차례 셔터를 내려버리느라 입국 심사에서 거의 2시간을 소모했지만 괜찮습니다.
이것이 북극의 공기인가?
에어컨을 돌리는 것 같지 않은데도 피부에 와닿는 서늘한 기운이 제대로 도착했음을 깨닫게 합니다.
렌터카를 수령하자마자 우리 가족은 첫 숙소인 릴레함메르(Lillehammer) 를 향해 E6 도로를 따라 달려갔습니다.
특이하죠?
보통은 오슬로 시내로 들어가서 시내 구경을 할텐데 말이죠.
웅장한 자연이 주된 관심사였던 저희 가족에게 이번 여행에서의 오슬로 시내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습니다.
크로스컨트리로 알려져있는 릴레함메르는 가르데모옌 공항에서 1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습니다.
장시간 비행으로 지쳤을 것 같아서 첫날은 체크인만 하고 바로 휴식을 취할 계획이었는데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노르웨이는 나라 전체가 시골같습니다.
도시나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면 호텔은 구경하기 어려워, 에어비앤비와 친해지실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Scenic Route 여행을 꿈꾸고 계신 여러분들 말이죠!
이렇게 블로그를 남길 줄 알았더라면 사진을 더 다양하게 남겼을텐데.
첫 날 숙소의 매트리스가 어마어마하게 두껍고 푹신하기가 호텔 뺨칩니다.
이 숙소가 특별한 줄 알았는데, 묵었던 숙소들이 대부분 그러했습니다. 호텔을 포함해서요.
이 나라는 잠자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피곤에 지친 하룻밤을 꿀잠으로 뒤로한 채, 피크닉을 싸가지고 먼 거리를 출발합니다.
오늘은 National Scenic Route 중 하나인 론데인(Rondane)과 트롤 벽(Trollveggen)을 지나 온달스네스(Åndalsnes)까지 가는 약 350km 길이의 코스를 달리게 됩니다.
론데인(Rondane) 은 27번 도로를 따라 론데인 국립공원 옆을 지나는, Scenic Routes 중 하나입니다.
E6 고속도로 대신 그 옆의 국도를 타는, 대안경로 같은 것이죠.
Rondane | Nasjonale turistveger
사실 이 코스는 처음부터 계획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첫 숙소인 릴레함메르에서 E6 도로를 따라 온달스네스까지 이동하려 했었는데
조금만 옆으로 돌아가면 Scenic Route 코스를 거쳐갈 수 있는 걸 알고는 계획을 변경했죠.
27번 도로를 타기 위해 갈림길에 들어서니 지금껏 달려온 E6 고속도로와는 느낌이 바로 달라집니다.
아름다운 시골(?)경치를 느긋하게 감상하며 오던 것과 달리, 오르막과 구불길의 향연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뭐지? 맞게 들어온건가?"
애꿎은 내비를 탓하며 순간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그게 올바른 길 이었습니다.
구글지도로만 봐서는 이 Rondane 코스가 산을 오르는 길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지나가다보니 점점 경치가 멋있어집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중간에 차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으러 내렸습니다. 그런데,
와, 너무 춥다..!!
그렇습니다.
차 밖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추웠습니다.
다시 자동차에 타서 온도계를 봅니다.
13도.
그리고 날아갈 것 처럼 불어대는 강풍.
미리 알아보았던 오슬로 날씨는 가장 더울때가 25도 정도라 대충 대관령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래서 반팔, 반바지에 가디건 하나 적당히 걸치고 이동하던 중 이었는데 말이죠.
완전 오산이었습니다. 지금 7월인데?
부랴부랴 캐리어에 있던 모든 방한용품을 꺼냅니다.
다행히 아들용 패딩점퍼(챙기면서도 설마 이걸 쓰겠어? 했던..)를 가져왔는데 이게 첫날부터 바로 쓰일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춥다고 경치 감상하는 걸 포기할 수는 없죠.
꾸역꾸역 사진을 몇 장 찍고선 다시 이동합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평생 만나보지 못했던 경관을 만나보게 됩니다.
"와!"
시원시원한 경치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곳에는 높게 자란 나무가 없었습니다.
낮은 초목과 죄다 바닥에 붙어있는 풀들.
식물이 살기에도 척박한 곳인가보다. 싶었습니다.
갈 길이 먼데, 자꾸만 중간에 차를 멈춰세울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Scenic Route 여행기에서도 이런 글을 봤었는데 왜 그런지 단번에 이해가 갔습니다.
제가 나가서 한참을 돌아오질 않자, 마나님도 차 밖으로 나와봅니다.
재빨리 제 옆으로 와서 포즈를 한 방 취한 뒤, 다시 차 안으로 대피합니다.
아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만 감기라도 걸릴까봐 도저히 내려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더 가다가 갑자기 아들이 외칩니다.
"어? 양이다!"
그렇습니다.
양들이 못 주변에서 풀을 뜯고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리에 갇히지 않은 채로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양 이라니. 너무 신기했습니다.
순간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
아이가 감기에 걸리더라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엔 데리고 내려서 같이 걸어봅니다.
사심을 담아 V90 사진도 남겨봅니다.
(V90 사진은 앞으로 지겹게 올라올 예정입니다. ㅎㅎ)
굽이진 27번 도로가 아주 멋스럽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까요?
27번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 계속 이어지는 비현실적인 풍경에 적응이 안 되었습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길을 따라 가던 우리 가족은 갈림길을 만났고, 마침 배가 고팠던 터라 근처에 알아두었던 디저트 가게를 가보기로 했습니다.
https://goo.gl/maps/fE6xTFj5NnGR4QMz8
카운터에 왜 불이 꺼져있지? 하고 주인장을 찾아 보채는데 알고보니 오후 12시부터 영업 시작이라고 합니다.
1시간이나 빨리 와서는 이것저것 내놔라 하고 있었던 꼴. ㅎㅎ
노르웨이에서는 비스킷 위에 브라운치즈를 얹어서 즐겨 먹는다고 하더라구요.
감사하게도 주인 아저씨께서 브라운 치즈를 맛보여주십니다.
그 맛은 매우 짭쪼롬한 초콜릿 같았습니다. 처음이지만 매우 매력적이었던 맛.
브라운 치즈의 맛이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으면 한 번 경험해봐야겠죠?
선물용으로 브라운 치즈를 사들고, 케익과 코코아를 한 잔 마시고
(가장 중요한!) 볼일을 본 뒤 또 출발합니다.
화장실도 나무로 만든 건물에 있었는데,
얼마전에 새로 지어 올린 것인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진한 나무향이 코를 자극했습니다.
여기 들르신다면 화장실은 꼭 한 번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27번 도로를 따라서 더 이동하다가,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었던 View Point를 만나서 차를 세웠습니다.
여럿의 산맥으로 이루어져있는 론데인 국립공원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View Point인데,
이 전망대 또한 아주 아름답습니다.
어떻게 자연과 이렇게 융화되는 건축을 생각해냈을까요?
Sohlbergplassen | Nasjonale turistveger
화창한 날씨 덕분에 마치 합성한 것 같은 사진들이 찍혔습니다.
그런데 거짓말같지만 정말로 배경이 저렇습니다.
숲과 강, 그리고 만년설이 쌓인 산들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병풍처럼 늘어서있는게 장관입니다.
어차피 E6로 지나가는 길 이라면, 이 뷰 포인트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27번 도로로 우회해서 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망대 옆에는 바라볼 수 있는 산과 그 높이가 안내되어 있습니다.
남한 최고봉인 한라산 높이가 2000m가 안되는데. 뭔가 수치가 현실적으로 와닿지를 않습니다.
전망대에는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있었는데요.
저희 부부는 관심이 없었지만 아이가 내려가보고 싶어해서 함께 가 보았습니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자 풀숲이 우리를 반겨주었고, 아이는 여기에서 자기만의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여행을 어린 아이와 동행할 지 말지 굉장히 많이 고민했었는데,
자연 속의 아이 모습을 보니 같이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이와 함께 오지 않았더라면 전망대 밑 계단 같은 데는 내려오지 않았겠지요.
주변이 모두 신기하고 소중한 것들 투성이이고, 그걸 아이가 증명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우리의 삶이 너무 당연해지고 감사함이 사라져버린 건 아니었나 싶습니다.
노르웨이에 와서는 매일 아침 일과인 웹툰도 안보고 게임도 안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곳 인터넷이 시원찮아 굳이 할 맘이 사그라드는 것도 한 몫 했지만
당장 공항 풍경에서부터 아름다운 것들 투성이인데, 이것들을 꽉꽉 눈에 눌러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몸에 달고 살던 휴대폰과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고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의미 없어보이는 풀숲에서, 길바닥에서 놀잇감을 발견하는 아이를 보며
그 동안 내 주변을 얼마나 무심하게 여기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 첫 날 ~ 둘쨋 날 점심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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