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노르웨이 자동차 여행 - 7. 송네피엘레(Sognefjellet, Norwegian Scenic Routes)

2022. 7. 28. 01:36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한 편의 교향곡과 같은.



농장에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이 오늘의 여정을 시작할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창 밖을 보니 멋진 V90의 뒷태가 보이네요.
내 차가 보이는 집이라니. 이것은 모든 아빠들의 로망이 아닐까요?

 

 

 

 

오늘도 가장 먼저 눈을 뜬 아빠는 슬리퍼를 신고 거실로 나와 창 밖 풍경을 조금 더 살펴봅니다.
정겨운 노르웨이의 시골 농장 풍경.
운전해야 할 거리가 긴데, 포근한 잠자리 덕분에 전날의 피로가 싹 날아간 것 같습니다.

 

 



오늘의 여정은 Scenic Route 중 하나인 Sognefjellet 입니다. 그 유명한 55번 도로 이지요.
아마 노르웨이 자동차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도로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Sognefjellet | Nasjonale turistveger

 

Sognefjellet

The Scenic Route travels from the cultural landscape in Lom across the highest mountain pass in Norway to the innermost part of Sognefjorden.

www.nasjonaleturistveger.no



우리 가족은 Lom 으로 이동하여 밑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Sognefjellet 은 길이가 100km가 넘어서, Scenic Route 중에 꽤 긴 구간에 속한답니다.

Norwegian Scenic Route - Sognefjellet



어제의 멋진 다리를 또 다시 건넌 다음, Lom 으로 향합니다.

Lom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목조 교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12세기 초반의 바이킹시대에 지어졌다니, 정말 오래되었네요.
마을 입구 바로앞에 존재감 뿜뿜하며 서 있으니, 도저히 못보고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롬 스타브 교회의 존재를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넓은 주차장과 기념품 가게도 있었고 관광버스도 들어서는 걸 보니
생각보다 더 유명한 관광지인 것 같아요.
55번 도로와 이어지는 회전교차로 바로 앞 이기도 하니 겸사겸사 들러보기에도 좋은 것 같습니다.


https://goo.gl/maps/4nyDymGkSaZmVgsi6

 

Lom stavkyrkje · Bergomsvegen 1, 2686 Lom, 노르웨이

★★★★★ · 개신교 교회

www.google.com

 

노르웨이의 교회에는 항상 묘비들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한 바퀴 둘러보며 수 많은 묘비들을 바라봅니다.
묘비에는 공통적으로 태어나신 해와 돌아가신 해, 그리고 이름이 적혀있었어요.
1800년대의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가족들의 이름이 새겨진 가족 묘비,
혼자만 우뚝 지키고 있는 묘비,
젊은 나이에 일찍 돌아가신 묘비..
묘비 주변에 놓인 알록달록한 꽃들을 보며 이런 묘비들이 제각각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걸 생각하니 따듯함을 느꼈습니다.

1악장. 가볍고 경쾌한 숲 속 산책.


이제 본격적으로 Scenic Route 인 55번 도로에 올라봅니다.
55번 도로의 첫 인상은 가볍고 경쾌했어요.
웅장한 산맥도 다이나믹한 물줄기도 없이 숲 길이 계속 이어졌죠.
Scenic Route 답지않게 가드레일이 있어서 조금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즐기는 산림욕.
가벼운 마음으로 나무들과 마주하니 피로도 가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쉼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Vegaskjelet | Nasjonale turistveger

 

Vegaskjelet

Vegaskjelet has the form of a lay-by where the road turns towards Leirvassbu lodge in the Sognefjellet mountains.

www.nasjonaleturistveger.no

 

 



높고 시원하게 뚫린 피오르 산맥들과 멋스러운 전망대.
아이가 잠든 틈을 타서 부부가 차례대로 구경하고 돌아옵니다.

55번 도로는 급격한 헤어핀이 이어지지는 않지만, 오르막 도로를 꾸준히 오르며 결국 고도를 1400m까지 점진적으로 획득하게 됩니다.
아이가 강원도에서 심하게 멀미를 했던적이 있어서 산악 도로 주행을 하게되면 항상 걱정이 되었는데,
차라리 이렇게 잠들어버린 게 다행이다 싶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다보니 또 하나의 전망대가 보였습니다.
적어도 이번 여행에서는 긴가민가 할 땐 무조건 가는 게 맞겠다고 생각한 터라, 우리 가족은 이렇게 가다서다를 반복합니다.
아마 노르웨이 자동차 여행자라면 누구든지 그럴 것 같기는 합니다. :D


https://goo.gl/maps/KKoAwiXkPz7USdT49

 

Jotunheimen Fjellstue · Sognefjellsvegen 3334, 2687 Bøverdalen, 노르웨이

★★★★☆ · 호텔

www.google.com

 

저 위에 올라서면 멋진 경치와 만날 수 있겠죠?

 

2악장. 오르막 길을 달리며 고조되는 분위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낮아지는 나무와 늘어나는 눈을 보니 점점 높이 올라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55번 도로는 친절하게도 중간중간 현재 고도가 몇 m 인지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었네요.

잠시 멈춰서 호수를 구경하기도 하고
환상적인 경치의 피크닉 테이블 옆에서 깊게 심호흡을 해 보기도 합니다.
뒤를 돌아보면 제법 많이 올라온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우리 가족은 어느덧 1400m 에 도달했고 저 멀리 휴게소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 화장실을 한 번도 못 만났던 터라, 너무나도 간절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곳을 지나는 이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곳.
산 꼭대기에 위치해있지만 간이 건물이 아니라 레스토랑과 기념품 샵이 갖춰진, 제대로 지어진 건물 이었습니다.


Sognefjellshytta | Nasjonale turistveger

 

Sognefjellshytta

Sognefjellshytta lodge lies where the scenic route reaches its highest point at 1,400 metres above sea level.

www.nasjonaleturistveger.no

 



조금만 더 가면 휴게소인데 바로 앞에서 양들과 마주치고 맙니다.
으악! 우리 급한데 제발 좀 비켜주면 안될까? ㅠㅠ



한참을 기다린 후 양들이 길을 비켜주자, 비로소 우리 가족은 휴게소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마침 곤히 자고있던 아들도 일어났네요.
나이스 타이밍!

일단 화장실에서 급한 볼 일부터 보고 혹시 몰라 페트병 음료수도 하나 구입합니다.

나무 기둥과 자갈바닥의 조화. 성삼재 휴게소 같은 곳 이지만 마치 미술관에 온 것 같은 기분 이었습니다.



아들은 실컷 자고나니 몸이 심심합니다.
마침 사람들이 데크로 이동중인 걸 보고 우리도 가 보기로 합니다.

이제 체력을 빼줄 시간입니다.
아들의 승부욕을 돋구는 덴 술래잡기만한 게 없습니다.

술래잡기 시~작!



헉, 눈밭이 나타났습니다.
아들 신발바닥은 이미 젖어버려서 양말까지 먹은 상태인데 이대로 돌아갈까?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랑곳않고 이 눈길을 건너 어디론가 위로 올라가더군요.
까짓거, 양말은 갈아신으면 되니 그냥 건너보기로 합니다.
... 사실 엄마아빠는 돌아가자고 슬쩍 떠보았는데 아들은 이미 뒤도 안 돌아보고 발을 내딛고 있었어요.

하얀 눈 위에 발도장 쾅쾅!



눈 밭을 헤치고 다시 땅을 딛었습니다.
잠시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하다가 반영이 기가막히게 이쁜 것 같아 사진기를 들어봅니다.

도로에서 캠핑카를 정말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디를 그렇게 걸어가는건가~ 했더니 이 길이 요툰하이멘 국립공원(Jotunheimen National Park)으로 가는 트래킹코스였네요.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는데, 55번 도로를 계획할 때에도 여길 지나게될 줄은 몰랐거든요.
직접 발로 딛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직접 이 위대한 산봉우리들을 밟아볼 수는 없겠지만, 두 눈으로 구경은 할 수 있겠네요!

처음으로 만난 요툰하이멘 국립공원 이정표.
힘을 내서 나즈막한 언덕을 올라가봅니다.

 

3악장. 처음 만난 빙하. 그리고 휘몰아치는 장엄함.


언덕에 올라서자 저와 아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와! 저거 빙하 아니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빙하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만년설을 봤을 때에도, 직접 눈 장난을 칠 때도 신기했었는데 빙하와의 조우는 신기함을 넘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아마 제 기억 속 빙하는 무서운 이미지로 가득해서 그랬을 것 같습니다.
전문 산악인들도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는 빙하 등반. 어디에서 갑자기 만나게될 지 모르는 크레바스.

'저길 걸어보려면 전문가이드와 함께 가야겠지?'
마음속으로 이런 상상도 해보았지만 지금은 먼 발치에서 직접 두 눈으로나마 지켜본 것에 만족했습니다.

황홀했던 빙하와의 만남. 사람들이 왜 언덕에 올랐는지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아들은 남들이 해놓은 것 처럼 돌탑을 쌓아올리고, 염소똥을 관찰합니다.
먹을 것을 놓으면 곧장 찾아오는 개미처럼, 쉬지 않고 자신만의 모험을 시작합니다.

 

열심히 돌탑도 쌓아올리고

염소똥도 관찰해봅니다.



실컷 놀았으니 이제 다시 움직이기 위해 왔던 길을 돌아갑니다.

마침 멀리서 한 부부가 크로스컨트리를 시작했네요.
진짜 눈밭 위에서, 요툰하이멘 국립공원을 향한 크로스컨트리라니.
이보다 멋진 운동이 얼마나 있을까요?

부부가 스키를 신고 다가오는 그림같은 모습.



다시 차량에 올랐습니다.
이후에도 도로에서 빙하를 만날 기회는 또 있더라구요.
우리의 멋진 V90도 빙하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겨주기로 합니다.

 



떠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또 하나의 전망대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저 화장실이 있는걸까? 방문했던 이 곳은 제게 잊지 못할 풍경을 선사해주었습니다.


Oscarshaug | Nasjonale turistveger

 

Oscarshaug

The renovated rest area offers a magnificent view towards the Hurrungane mountains, with the iconic Mount Store Skagastølstind.

www.nasjonaleturistveger.no



아내는 이 곳 화장실을 다녀오더니 처음보는 최신화장실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전 가보지 못 했는데 지금와서 보면 내심 아쉽습니다.

전망대에 올라 주변 경치를 둘러봅니다.
획득했던 1400m 고도를 반납하기에 앞서, 우리가 내려갈 길을 미리 바라봅니다.
굴곡진 산맥과 그림같이 그려놓은 구불길.
그저 넋을 놓고 바라만 볼 뿐 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왼쪽에 난 구불길로 가게될 줄 알았습니다.
우리의 운전이 무척 흥미로워질 것 같아 설렜었는데, 알고보니 저긴 갈림길에서 빠져야 갈 수 있는 길 인 모양이더라구요.(유료도로)
우리가 향할 길은 오른쪽 산맥 사이의 '골' 입니다. 이제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이죠.

유료도로의 도로 상황이 어떤 지 모르겠습니다만, 기회가 된다면 저 위로도 달려보고 싶네요.
또 얼마나 멋진 장면을 안겨다줄지 궁금합니다.

 



이런 풍경을 직접 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거대하고 장엄한 자연 앞에서 나 자신과 우리 사회가 겪고있는 온갖 갈등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인지 잠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린 무엇을 위해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을까요?
남들과 비교하고 차별을 하고 재단하고 판단하는, 이런 숨막히는 삶을 굳이 자처할 필요가 있을까요?
피부에 와닿는 서늘한 바람과 눈 앞에 펼쳐지는 황홀한 풍경에 마음 속의 분노와 화. 그리고 불편했던 감정들이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이제는 55번 도로를 하산할 시간.

 

4악장. 폭풍이 휩쓸고 간 듯한 평온한 호수.



숨 막힐 듯한 경치를 구경한 우리 가족은 높이 올랐던 만큼 한참을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내내 브레이크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회생제동을 적극 활용했는데, 무려 배터리의 절반이 충전되었네요.
(공짜 전기 개이득!)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피크닉 장소를 찾던 중, 잔잔한 호숫가에 비어있는 테이블을 발견합니다.



https://goo.gl/maps/mEZGiyCmiayrUgbP7

 

VisitSkjolden · 6876 Skjolden, 노르웨이

관광업자

www.google.com

이제 아침 일찍 준비한 샌드위치를 꺼내들 시간입니다.



아름답고 평온한 호숫가를 바라보면서 샌드위치를 입에 무니, 그야말로 꿀맛이었습니다.

그림같은 피크닉.



(가본적은 없지만) 오스트리아에 온 것 같은 풍경입니다.
이 나무배가 없었다면,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정말로 어딘지 맞추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행복한 식사를 마치고 우리 가족은 또 이동을 합니다.
55번 Scenic Route 도로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끝나게 되었습니다.
태풍이 소멸되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휘몰아치던 웅장함이 고요한 호수로 이어지더니 어느 순간 사라졌어요.



Scenic Route 지정 범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도로는 여전히 시선을 빼앗기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한 편의 교향곡과도 같았던 55번 도로.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자연을 100km 남짓의 도로 안에 모두 축약시켜놓은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