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30. 12:58ㆍ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노르웨이에서 만난 미시령 옛 길
송네피엘(Sognefjellet)의 아름다운 경치를 맛 본 우리 가족의 남은 여정은 플롬(Flåm)을 지나 운드레달(Undredal)의 숙소로 가는 것 이었습니다.
다른 일정은 계획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오늘의 총 이동거리가 너무 길기도 했고 (350km 정도), 특히 55번 도로를 지나가며 시간도 정신도 많이 빼앗길 거라는 예상 때문이었거든요.
그런데 55번 도로를 다 지나고 보니, 우리 가족 모두 상태가 너무 좋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가는 걸로 계획했었던 Aurlandsfjellet 를 오늘! 집으로 가면서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Aurlandsfjellet | Nasjonale turistveger
비록 Scenic Route 구간은 끝났지만, 55번 국도는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동화 속 마을과 같은 풍경이 계속 이어졌지요.
라르달(Lærdal) 로 넘어가기 위한 페리를 타야해서, 도로를 따라 조금 더 주행합니다.
이 때 네덜란드에서 온 구형 디펜더와 함께 긴 거리를 함께 했는데요.
이번 여행 중에는 캠핑카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본격적인 여행 채비를 한 올드카를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ONE LIFE, LIVE IT"
멋쟁이 디펜더 할아버지가 전해주는 짧고 굵은 메시지.
이 말씀을 가슴 한 쪽에 새겨서 두고두고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라르달에서 플롬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라르달 터널을 타고 워프를 하는 방법,
또 하나는 Aurlandsfjellet 도로를 따라 산 넘고 강 건너 가는 방법이 그것이지요.
라르달 터널은 세계 최장 터널로도 널리 알려져있더라구요.
그 길이가 무려 24.7km 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양양터널이 10km 정도이니, 얼마나 긴 터널일지 가늠이 되실까요?
라르달 터널은 자동차 여행을 마치고 오슬로로 돌아가는 날 경험하게 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발적으로 미시령 옛 길 Aurlandsfjellet 로 돌아서 가기로 합니다.
Scenic Route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좁은 폭의 도로가 이어지며 옆으로는 듬성듬성 시골집이 있었습니다.
이 풍경이 마치 강원도 두메산골을 연상케 합니다.
그래서 더욱 미시령 옛길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터널이 뚫려 라르달과 플롬 사이의 이동이 편리해진 것도 유사했으니까요.
친숙함에서 비롯된 편안한 마음으로 주행을 이어가봅니다.
지금까지의 Scenic Routes와 마찬가지로, Aurlandsfjellet 역시 Winter Notice (눈이 많이 와서, 6월 이전에는 통제되는 도로) 에 해당하는 도로인 만큼, 구불구불 오르막이 이어집니다.
숲 속에 나 있는 폭 좁은 도로를 따라 구불길과 헤어핀을 지나보는 경험도 특이하네요.
중간에 Norwegian Scenic Routes 표지판이 등장했습니다.
혹시라도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까봐 그렇지 않다고, 잘 가고 있다고 알려주려는 목적이었을까요?
그렇다면 성공했습니다.
Scenic Route 의 명예로운 훈장을 받기에는 아직까진 좀 심심했거든요.
의심을 무너뜨려버리는 신뢰. 그리고 뒤이어 찾아오는 설렘과 기대감.
그것이 여행하는 동안 Scenic Route 표식이 전해주는 힘 이었습니다.
얼마 간 오르막을 더 오르자, 앉아서 쉬고 있는 두 마리의 양을 발견했습니다.
도로 위에서 숱하게 만났던 양들이지만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싶은 마음에. 그리고 마침 쉬어가면 좋겠다. 싶은 타이밍이기도 해서 차를 멈춰 세워봅니다.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양들에게 다가가봅니다.
양들이 다가오진 않을까? 싶었는데 관심이 없었는지 응가만 하고서는 그냥 가 버리네요.
응가할 때 묻지 않도록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는 게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지구를 걱정하는 마음
송네피엘(Sognefjellet)에서 구비한 쉬통을 유용하게 사용한 뒤, 우리 가족은 조금 더 산길을 올랐습니다.
그리고 멋진 전망대를 만나게 되었지요.
Vedahaugane | Nasjonale turistveger
초록과 눈으로 뒤덮힌 아름다운 산과 탁 트인 풍경.
시멘트 산책로를 따라 곡선으로 멋스럽게 늘어뜨린 의자가 보입니다.
정말로 노르웨이스러운 건축입니다.
여기에 앉아서 바라보는 경치도 너무 멋지지만, 저는 이 의자에서 시선을 떼기가 어려웠습니다.
의자가 배경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그림이 너무 환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이 곳은 그저 경치만 구경하기 위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Vedahaugane 의 동굴 이라고 적혀있네요.
저 곰의 이름이 Vedahaugane 일까요?
그림을 보니 유쾌한 일인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아보이지요.
조금 더 올라가보니 정말 동굴이 나타났네요.
아들은 동굴 속이 아무런 불빛 도 없는 것 처럼 어두컴컴해서 잠깐 망설였는데, 그래도 용기를 내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동굴 속에는 검은 곰 한마리가 쓰레기더미 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장에 뚫린 작은 채광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쓸쓸하게 곰을 쓰다듬어주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한 귀로 듣고 흘리거나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던 환경 이슈들이 요 근래에는 점점 대두되고 있지요.
특히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는 속도가 전례없이 가파라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저 1도 2도 기온 올라가고 해수면 좀 높아지는게 무슨 대수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여러 과학자들은 이런 작은 변화가 가져올 전 지구적인 재앙에 대해 수 차례 이야기 하고 있더군요.
무엇보다도 현재 추세로라면 머지않아 온난화를 막을 수 없어진다는 이야기도 들으니 겁이 덜컥 납니다.
아들을 비롯한 우리의 후손들이 성인이 된 세계는 너무나도 살기에 척박해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죠.
멋진 풍경과 시원한 공기로 실컷 휴식을 취했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마음으로 또 여행을 이어가봅니다.
중간에 검은 소 들이 방목되어있는 곳을 만났어요.
이런 산 위에 집이 여러 채가 있다니 신기한 일이죠.
처음에는 이런 곳에 왜 집이 있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은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가축들이 거주하는 집 인 모양이더라구요.
그제서야 뜬금없이 절벽 한가운데나 인적 없는 산속에 헛간들이 왜 있는건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 소들은 누가 키우는걸까?
주인은 저 소들을 어떻게 관리하는걸까? 근처에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우리 가족은 또 이동을 합니다.
그렇게 얼마 간 달려가다가 드디어 화장실 같은 건물을 만났습니다.
마침 소변을 좀 해결했으면 싶었는데. 만세!
Flotane | Nasjonale turistveger
헉, 그런데 그건 화장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노르웨이의 자연속에 녹아있는 멋진 건축물이었던 거죠.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주차된 차들이 너무 많아서 & 아직 갈 길이 먼 고로 우리 가족은 여기에선 정차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기로 했습니다.
거울같이 투명한 Flyvotni 호숫가 옆을 지나봅니다.
https://goo.gl/maps/HngeAHMTdp2hBuPRA
집채만큼 높이 쌓인 눈 사이로도 지나가봅니다.
온통 얼어붙어 눈으로 덮여버린 Hornsvatnet 호수에도 차를 세우고 구경해봅니다.
https://goo.gl/maps/KAv3HUpGSPP47yTH7
감사합니다.
그리고 점차 걷혀가는 구름과 저 멀리 발 아래에 놓이는 산맥들.
아마도 우리는 Aurlandsfjellet 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온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우리의 자동차 여행이 클라이막스에 다달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하늘과 찬란한 태양, 그리고 그런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구름.
저 멀리 병풍처럼 늘어서있는, 눈이 쌓인 산맥들.
Scenic Route 투어의 대미를 이렇게 장식하게 되다니.
우리 가족은 정말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욕심내서 오늘 들러보기를 잘 했어요. 귀찮다고 피곤하다고 내일 찾아왔다면 이런 멋진 장면은 만나보지 못 했겠지요.
(실제로 다음 날 비가 왔습니다.)
https://goo.gl/maps/YYsCXHeR3QTTbT8i8
노르웨이의 지붕에 올라 하늘과 마주한 것 같은 기분.
이런 황홀한 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니 너무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장엄하게 휘몰아치던 풍경과도 이제는 작별할 시간이 왔습니다.
남은 여행 일정동안 이렇게 산을 올라 높은 곳에서 경치를 구경하는 일은 없겠지요.
이렇게 좋을 줄 알았다면 좀 더 욕심내서 여행기간을 길게 잡을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 순간이었습니다.
내리막 헤어핀길도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사방이 탁 트이고 시원시원하게 뻗은 내리막 도로는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봤던 내리막 중 가장 멋있는 도로였습니다.
내리막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유명한 스테가스타인 전망대를 만났습니다.
이 곳이 어딘지는 모르더라도 이 멋진 전망대의 사진은 보신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플롬 인근에 위치해있으면서 송네피오르를 관람할 수 있는 전망대로 유명하지요. :D
인적이 드문 Scenic Route 답지 않게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있었습니다.
Stegastein | Nasjonale turistveger
특히 아름다웠던 하늘 덕분에 송네피오르를 기분 좋게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게이랑에르는 폭이 좁고 산이 높아 험준하고 웅장한 느낌이었는데, 송네는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을 주는 인상을 주는 듯 했습니다.
다시 출발하여 길을 따라 조금 내려와보니 새로운 뷰 포인트가 보였습니다.
이 뷰 포인트 이름은 오스(Ås) 입니다. 구글지도에 제대로 표시가 안 되고있네요.
스테가스타인 처럼 본격적인 전망대는 아니지만 붐비는 인원이 적고 주변이 좀 더 트여있어 주변을 둘러보기에는 더 좋아보였습니다.
스테가스타인 전망대는 높이가 높아서 실감이 잘 나지 않는 부분도 있었는데, 땅에 좀 더 가까워지니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지요.
아내도 여기가 훨씬 좋다고 이야기했는데, 저도 공감했습니다.
오스가 주변을 둘러보기에 더 좋은 위치라는 생각입니다.
https://goo.gl/maps/psDK2mp5bvz2qf1P7
그렇게 아울란스피엘 scenic route 를 모두 마치고 아름다운 아울란(Aurland) 마을을 지나갑니다.
아울란스피엘을 지나 플롬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마을을 꼭 지나가야하지요.
열심히 달려 플롬에 도착한 저희는 저녁 식사를 해결할 식당을 찾았는데, 아쉽게도 단 한군데도 문을 연 곳이 없었습니다.
음식점도 모두 마감했고
보통은 밤 9시까지는 영업을 하던 걸 봐온 터라 서두르지 않았지만 플롬은 모든 것이 8시면 많은 곳들의 문이 닫히네요.
그런데 마감시간 전에만 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웨이팅과 잔여 좌석까지 감안해서 미리 컷 합니다.
그리고 유명한 관광마을 답지 않게 플롬에는 레스토랑이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도착했을 때엔 어느 식당엘 가나 줄이 길게 늘어서있었습니다.
가장 평점이 높은 아이기르 미크로브루어리(Ægir microbrewery) 는 대기가 길어서 예약없이 들어가기는 쉽지 않아보이고, pub이라 그런지 실내에는 담배 연기가 퍼져있었습니다.
그 외에 레스토랑은 한두 개 남짓 뿐입니다.
마트도, 노상 케밥집도 8시면 문을 닫네요.
허기진 배를 쓸어내리고 어쩔 수 없이 집에가서 밥을 해 먹기로 합니다.
오늘과 내일 우리 가족이 묵을 숙소는 운드레달(Undredal)이란 마을에 위치해있습니다.
플롬을 통과해서 터널을 지나면 우측으로 피오르 골 사잇길이 나타나는데요. 운드레달 마을은 이 길 끝에 위치해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플롬에 숙소를 구해보려 했는데 너무 비싸거나 마땅한 숙소가 없었어요.
특히 여행기간이 길어지면서 세탁을 할 수 있어야했는데, 세탁기가 있는 곳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사실 운드레달은 대안을 찾다가 만나게 된 숙소였고 별로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덕분에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죠.
이렇게 염소 떼에 가로막혀 한참을 서 있어 보기도 하고
커다랗게 솟은 피오르의 사잇길로 달려보기도 합니다.
새벽부터 밤 까지, 길었지만 아름다웠던 오늘의 여정.
하지만 아직도 시간이 흘러가는 게 그저 아쉬울 따름입니다.